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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특집

게임이 된 문학 ‘법 앞에서’ - Before The Law

Before The Law

이번 시간은 게임 소개를 빙자한 본격 문학 산책. Before The Law는 프란츠 카프카의 사후에 출판된 미완성 소설 ‘소송’ (예전에는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에서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우화 ‘법 앞에서’를 가지고 만든 인터랙티브 소설이다.

게임은 ‘법 앞에서’를 간단하게 줄이고 재해석했다는 점 정도만 말하기로 하고, 소설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또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읽기는 힘들 것 같은 ‘소송’은 주인공 요제프 K(카)가 자신은 알지도 못 하는 죄를 지었다는 명목으로 소송에 휘말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거대한 권력과 관료제도 속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 하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료제 속에서 환상적인 면을 보는 카프카 작품의 특징이 잘 그려져있다.

‘법 앞에서’는 법정에 소속된 신부가 K에게 ‘재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착각을 깨닫게 해주겠다’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한 부분이면서 단편 소설이기도 한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의미를 해석해볼 수 있다. 약 백 년 전에 쓰인 이야기가 아직도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생각해볼만 하다.

짧은 이야기라 읽기 부담이 없을 것 같아 여러분들께 전문을 소개해보기로 했다. 이곳의 번역을 바탕으로 원문을 영어로 옮긴 번역을 참고해서 몇 가지 단어만 고쳐두었다. 또 원문은 문단 구분이 없는데 모니터로 긴 글을 읽는 건 피곤한 일이라 임의로 문단 구분을 넣었다. 읽어보시고 게임을 하면 어떤 내용인지 굳이 옮겨적지 않아도 알아보실 거라고 생각한다.


법 앞에서

법 앞에 한 문지기가 서 있다. 이 문지기에게 한 시골사람이 와서 법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그에게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남자는 잠시 생각한 후 나중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는 있지만," 하고 문지기는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돼."

법으로 들어가는 문은 평소와 같이 열려 있고 문지기가 한쪽으로 물러섰기 때문에, 남자는 몸을 굽혀 문을 통해 그 안을 들여다본다. 문지기가 그 모습을 보고는 큰소리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끌린다면, 내가 금지하더라도 들어가 보게. 그러나 알아두게. 나는 힘이 세지. 그런데 나는 말단 문지기에 불과하다네.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문지기가 하나씩 서 있는데, 갈수록 더 힘이 센 문지기가 서 있다네. 세 번째 문지기만 되어도 나조차 그 모습을 쳐다보기도 어렵다네.”

시골 사람은 그러한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법이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들어가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큰 매부리코와 길고 가는 타타르인 같은 콧수염의, 모피외투를 입은 그 문지기의 모습을 주의 깊게 쳐다보더니, 차라리 입장을 허락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고 결심한다.

문지기가 그에게 걸상을 주며 그를 문 옆에 앉게 한다. 그 곳에서 그는 여러 날 여러 해를 앉아서 기다린다. 입장 허락을 받으려고 그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여러 가지 부탁으로 문지기를 지치게 한다. 문지기는 가끔 그에게 간단한 심문을 하는데, 그의 고향에 대해서 자세히 묻기도 하고, 여러 가지 다른 것에 대해서 묻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체 높은 양반들이 으레 던지는 질문처럼 대수롭지 않은 질문들이고, 마지막에 가서는 언제나 그를 아직 들여보내줄 수 없노라고 문지기는 말한다.

남자는 여행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는데, 문지기를 매수하고 싶은 마음에 가장 값진 것마저 모두 써버린다. 문지기는 주는 대로 받기는 하면서도 “네가 무엇인가 소홀히 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받을 뿐이야.” 라고 말한다.

여러 해 동안 그는 문지기에게서 거의 눈을 떼지 않는다. 그는 다른 문지기들은 잊어버리고, 이 첫 번째 문지기를 법으로 들어가는 데 유일한 방해꾼으로 생각한다. 그는 처음 몇 년 동안은 이 불운에 대해서 큰소리로 저주하다가 후에 나이가 들어서는 그저 혼자말로 투덜거린다. 그는 어린애처럼 유치해지고, 문지기를 여러 해에 걸쳐 살펴보다 보니 문지기의 모피외투 깃에 붙어 있는 벼룩까지 알아보게 됐기 때문에, 그 벼룩에게까지 자기를 도와 문지기의 마음을 돌리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마침내 시력이 약해져 그는 자기의 주변이 정말 점점 어두워지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눈이 자기를 속이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 어둠 속에서 그는 알아차린다. 법의 문에서 광채가 꺼지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음을. 이제 그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죽음을 앞두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문 앞에 머무르면서 경험한 모든 것들이 그가 여태까지 문지기에게 물어보지 않았던 하나의 물음으로 집약된다. 그는 이제 굳어져가는 몸을 일으킬 수 없어서 문지기에게 눈짓을 한다. 문지기는 그의 말을 듣기 위해 그에게로 몸을 깊숙이 숙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두 사람의 키 차이가 시골 사람에게 아주 불리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도대체 뭘 더 알고 싶지?”라고 문지기가 묻는다. “만족할 줄을 모르는군.”

“모든 사람들이 법을 얻으려고 애를 씁니다.”하고 그는 말한다. “지난 수 년 동안 나 이외에는 아무도 들여 보내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된 일이지요?”

문지기는 이 사람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아차리고, 청력이 약해진 그의 귀에 대고 큰소리로 말한다.

“자네 이외에는 아무도 이 문으로 입장을 허락받을 수 없었어. 왜냐하면 이 문은 오직 자네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제 가서 그 문을 닫아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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