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눈에 띄는 경향 중 하나가 게임 제작자들이 게임의 영역을 확대하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예술'로 구분되는 쪽으로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두드러진다. 익숙한 영역은 아니지만 게임도 한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 시도들이 이제 막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기로 유명한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 같은 경우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잘 짜여진 세계관과 줄거리는 플레이어가 영화나 소설을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
그럴 때 게임은 오히려 간접적인 체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체험에 가까운 생생한 감동을 전해주는 매체가 된다.
ImmorTall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임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과정이 중간 중간 생략되어 끝에 가서는 모호한 어떤 느낌만을 가지게 된다.
대략적으로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 큰 위험을 겪은 외계인이 인간들의 도움을 얻고, 다시 그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희생을 통해 보답한다.
임모탈의 이야기는 게임이 정해놓은 범위 때문에 한 쪽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다양한 시도를 해도 결국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이 때문에 게임을 접한 사람들 간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임모탈을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정해진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플레이어가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바꾸려고 시도해도 결국 제작자가 하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임이 예술적인 무언가를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면 다른 도구나 매체와 가장 분명하게 구별되는 점은 폭 넓은 가능성 중에서 체험자가 어떤 가능성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될 것이다. 즉, 여러 이야기 중에서 유저가 선택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임모탈은 그 가능성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진듯한 느낌을 준다.
또 논란이 되는 점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애매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만, 닫힌 가능성 때문에 결국 사람들을 정해놓은 비극으로 끌고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만 심어주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그것도 게임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왔으면서 말이다.
이런 논란의 가운데서도 확실한 것은 대부분 비슷한 정서를 체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막으려고 했지만 막을 수 없는 결과가 주는 느낌, 벌어진 일과 반대되는 '죽지 않음'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의문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임모탈의 시도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판단하려면 정해진 방향으로 끌고가는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인가 하는 점과 모호함으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었다는 점 사이에서 논란을 한 번 더 벌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