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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특집

무엇이 좋은 게임인가? 그 10가지 기준

100개의 글을 작성하고 자축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백 번째를 기념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일부러 주제를 정해서 글을 쓴 건 아니었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데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키우다보니 시기가 맞아 적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200회 특집을 쓰게 되었지만 사실은 꽤 오래 전부터 써볼까 하던 걸 이제 마치는 셈이다.

시간이 오래 걸린 사연은 이렇다.

매일 같이 잔뜩 쏟아지는 게임들 중에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선택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좋은 게임이란 뭘까?”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이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정도에 해당하는 물음이란 걸 깨달았다. 그 정도로 거창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다. 저 질문에 답을 하려면 내가 갖춰야 하는 배경지식이 상당히 필요하고,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가지에 가지를 치는 근원적인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도달한 결론은 ‘아 씨 모르겠다’였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올린 글 목록을 하나씩 보면서 이건 왜 골랐을까 생각해보고, 글 밑에 달린 다음 View 추천이 많은 글들의 특징을 하나씩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추린 몇 가지의 기준이 이것들이다.

게임을 즐기는 보통 유저의 입장에서, 다른 게임이 아닌 플래쉬 게임을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해봤다.

0. 재미있는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래의 기준들을 실제로 블로그에 적용한다면 모순되는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다른 조건보다 항상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건 그 게임이 재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도 ‘재미’만 있으면 된다.

하루에 몇 개의 게임을 보는지 평균은 모르겠지만 한 게임을 올리려고 어제 몇 개의 게임을 봤는지 세어봤더니 총 45개였다. 이렇게 말하면 오래 걸렸을 것 같지만 실제로 무엇을 올려야겠다고 결정하는데는 한 게임당 5초면 충분하다. 재미가 있나 없나는 판단한다기 보다는 느끼는 것이니까 순간적으로 알 수 있다.

문제는 왜 재미가 있는가 하는 게 간단하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재밌는 게임은 왜 재밌을까.

1. 포장이 어떻게 되었는가? – 디자인, 그래픽

게임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건 포장의 문제이다. 물건의 질은 포장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시선을 끌지 못 하는 물건은 선택받을 기회도 적다.

잘 꾸며지거나 독특한 생김으로 시선을 끄는 게임들은 일단 일정 시간 이상은 쳐다보게 된다. 독특한 생김이라는 말을 썼는데 깔끔하고 보기 좋은 것만 좋은 포장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8비트 게임 느낌을 주는 픽셀 캐릭터도 충분히 사랑스러울 수 있다.

첫인상만 중요한 건 아니다. 생김새가 좋은 게임은 진행하는 동안 시각적으로 즐거운 체험을 하게 해준다. 역시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닐까.

이렇게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게임들을 몇 가지 골라봤다. 기이한 동화 같은 느낌을 주는 Butterfly fantasy, 픽셀로도 훌륭한 그림을 보여줄 수 있단 걸 보여준 Small Worlds, 그림이 보기 좋은 Gretel and HanselLondon이 그런 게임들이다.

2. 남과 다른 것을 가졌다. – 독창적 게임 아이디어

하나의 장르를 대표하는 공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게임도 재미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전에 누군가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한다거나, 익숙한 방식에 색다른 아이디어를 더했을 경우는 눈이 번쩍 뜨인다. 다음 View 추천이 많은 게임들의 특징도 무언가 다른 게임들이 많았다.

Is this a game?은 도발적인 제목처럼 게임이라는 틀까지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Copy cat을 처음 했을 때 미술이나 색채 같은 것들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5 Similarities, 4 Differences는 익숙한 방식의 게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다.

Hanamushi는 게임의 영역을 바깥으로 넓혀 게임이면서 동시에 한 작가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 되었다. Dinosaurs Didn't Have Keyboards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독특한 조작방식으로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Record Tripping은 여러 가지 게임 장르를 좋은 아이디어로 섞어 눈에 띄는 게임으로 만들어냈다.

3. 할 수 있는가? 하고 싶은가? – 적절한 난이도

너무 쉬우면 곤란하다. 게임을 접한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도전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점이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쉬운 게임은 사람을 자극하지 않는다.

반면에 지나치게 어려운 게임은 중간에 도전을 포기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Pong을 하는데 컴퓨터가 사기를 치면서 모든 공을 받아치면 더 이상 하고 싶어지지 않을 거다.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는 방법도 있다. 플레이어가 움직이는 캐릭터에 제약을 주는 방식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결함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영상이 있다.

블로그에 골라놓은 게임들은 모두 난이도의 선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포기하게 만드는 어떤 선에 가까이 다가가긴 했지만 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임의 목록이다. - Duck and Hover, Futility, Recoil

4.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 직관적인 게임

게임 소개(Instruction)가 길면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선 큰맘 먹어야 한다. 딱 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임은 건드리고 싶지 않다.

게임 설명이 영어로 되어있으니 영어권 사람들은 다 읽고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람 본성은 다 같다. 그 사람들도 긴 설명서는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단순한 게임만 만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Gemcraft를 끝까지 진행하려면 알아야 할 게 많다. 하지만 게임을 시작했을 때 뭘 해야 할지 불분명하지는 않다. 보석을 타워에 올려놓으면 일렬로 나오는 적을 공격한다는 게 분명하게 보인다. 게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도 첫 단계는 깰 수 있다.

보석을 던져 적을 공격하거나, 보석을 합성하거나, 업그레이드는 어떻게 한다거나 하는 복잡한 부분은 이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Play 버튼을 누른 이후에 몇 페이지나 되는 설명을 읽어야 조작이 가능하다면 시작도 하지 않고 게임을 포기할 사람들이 많을 거다.

5. 어떤 소리를 들려주는가? - 효과음과 배경음악

게임에서 소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는 스피커를 끄고 해보면 알 수 있다. 배경음악에 따라 게임의 무게감이 달라지고 효과음에 따라 사용하는 아이템의 느낌이 달라진다.

보통 소규모 팀이나 개인 단위로 제작하는 플래쉬 게임에서 음악, 배경음을 신경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프로그래머고 음악을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다.

하지만 신경써서 삽입한 음악과 효과음이 가져오는 차이는 엄청나다. 이용자가 하는 경험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다.

적어도 이 정도로 엉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선 Toytown Tower Defense를 시작해서 배경음악을 한 번 듣고, Down Hill Chill를 잠깐만 해보면 여러분 모두 비슷한 단어를 떠올릴 거다. 예를 들자면 ‘뜬금없다.’ 같은 것들.

반면에 Vector Conflict는 단순한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사운드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Robot Unicorn Attack은 난이도가 짜증을 유발할 정도이지만 음악으로 사람을 진정시킨다. 1066도 배경음악과 성우를 절묘하게 활용해 전장에 있는 느낌을 그대로 전달한다.

6. 몰입과 집중

대부분의 경우 게임을 하는 동안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게 그 게임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High speed chase 처럼 속도가 빠르다거나, Elona Shooter 처럼 할 일이 많다거나 하는 경우 쉽게 게임에 집중할 수 있다.

재밌는 게임의 경우에도 집중이 흐트러지는 때가 있다. 보통 한 스테이지가 너무 길다면 그러기 쉽다. 집중을 하는 건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유발되는 일이기 때문에 오래 지속하고 있기 힘들다. 적절히 쉬는 시간을 주지 않으면 지겹고 힘들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전체 플레이 시간을 말하는 건 아니다. 한 게임을 끝내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수록 좋은 것 같지만 중간중간 완급조절을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이다.

반대로 시작부터 끝까지 딴 생각이 들게하는 Janey Thomson's Marathon은 ‘왜’라는 물음을 일으켜 자아를 찾게 만드는 대단한 게임일지도 모르겠다.

7. 다양성에 대한 배려 – 자유도

게임에서 자유도라고 하면 게임 중에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폭이 넓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자유도는 좀 더 넓은 의미이다.

어떤 게임이 WASD로만 이동하고 마우스로 사격을 하게 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여러분 중 대부분은 별 문제 없이 게임을 진행할 거다. 하지만 왼손으로 마우스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불편을 겪게 된다. WASD로 이동한다면 방향키로도 이동할 수 있게 선택지를 줘야한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방향키가 아무런 역할도 배정받지 못 한 게임이 상당히 많다. 이건 키배치를 플레이어가 할 수 있게 해주는 옵션을 만들어도 간단하게 해결된다.

또,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거의 배려가 없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음량조절이다. 어찌된 이유인지 플래쉬게임의 음량은 지나치게 크게 설정된 경우가 많았고 음량조절은 둘째치고 Mute 버튼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컴퓨터를 켜놓고 음악을 듣는 사람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플레이어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게임을 할 때 꼭 이름을 입력해야 한다거나, 프롤로그 따위는 보기 싫은데 Skip 버튼이 없다거나,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데 Play as Guest가 안 된다거나 등등.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게 만드는 건 불편함을 유발한다.

좁은 의미의 자유도도 높은 게 좋다. Test Pilot은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들어 목표지점으로 이동하는 게임인데 어떤 형태로 만들어도 상관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Blosics의 경우도 정해진 양만큼 블럭을 무너뜨리면 된다는 규칙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플레이어에게 맞겨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8. 긍정적 감정, 어떤 감정을 유발시킨다.

게임은 즐기려고 하는 것이고 플레이 하는 동안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체험을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어떤 취향을 가졌는가에 따라 의견이 나뉘겠지만, 일부러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건 다들 인정하지 않을까.

플레이어가 어떤 체험을 하게 될지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게임들도 있지만, 긍정적인 어떤 감정을 강하게 유발하는 게임들도 있다.

Bunni: How we first met를 통해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1066을 하다보면 전장에 참여한 생생함이 느껴진다. Closure는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느낌이 잘 표현되었고, You have to burn the rope를 끝내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게 된다.

게임이 전달하려는 느낌에 대해 컨셉을 명확하게 잡고, 그것을 잘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면 오래 기억되는 게임이 된다고 생각한다.

9. 정교한 계산 - 게임 디자인

게임 디자인이란 그래픽 디자인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8번에서 했던 이야기와도 연관이 있는데 플레이어가 어떤 체험을 하게 될지 예측하고 계산해 게임 안에 적절하게 배치시키는 작업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탈출 게임을 할 때 어떤 물건을 이용하면 무슨 문제가 해결될 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열쇠구멍으로는 열쇠가 들어가거나 조금 꼬았을 경우 클립이 들어가야지, 엉뚱한 물건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퍼즐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어떻게 만들어두었는가 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Closure가 좋았던 건 게임의 아이디어와,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문제를 구성해놓은 방법 때문이기도 했다. 이용해야 할 물건도 분명하고 방법도 간단하지만 해결은 쉽지 않은 퍼즐은 아무나 만들 수 없을 것이다.
 
10. 완성도

마지막으로 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완성도 즉 만듦새가 좋아야 한다. 기술적으로 오류가 발생하지 않고, 허술하게 공략당하는 부분이 없는 것 같은 기본적인 사항을 지켜야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게임기기나 PC용으로 발매되는 게임이 허술하게 나오는 일은 거의 없지만 캐주얼 게임 쪽은 이야기가 다르다. 기본을 지키지 못 하는 게임도 수두룩하다.

좀 더 나아가 그래픽이 좋고, 캐릭터 디자인이 잘 되었으며, 게임을 즐기기 좋게 만들었는가 등등 전문가가 만든 티가 나는 게임이 그렇지 않은 게임 보다 재밌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게임기 버전으로 나와도 될 것 같은 슈팅 게임 Light Heroes라든가 3D FPS 게임과 별 차이가 없는 Bullseye 정도까지 가면 과분해질 정도다. Arcuz를 재밌게 한 것도 돈 주고 사서 한 게임보다 잘 만들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불필요한 이야기를 줄인다고 줄였는데 꽤 긴 글을 쓰고 말았다.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니다.

좋은 게임이란 어떤 점을 갖추고 있을까를 생각하다보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럼 나쁜 게임은 왜 나쁜 게임일까. 이런 기준들을 반대로 실천하고 있는 게임이 나쁜 게임일까?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나쁜 게임을 좀 더 나쁘게 만들어주는 요건들도 있었다.

이어지는 글에서 나쁜 게임이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